차의 역사는 신화, 전설과 민족 설화가 뒤섞여 있습니다. 고대의 숲과 사원에서 시작되어 서로 연결된 역사의 그물망을 거쳐 세계적으로 활발한 교역이 이루어지는 현대까지 이어집니다. 이 다채로운 차의 계보를 풀어내려면 추리소설과 식물 고고학 양쪽 모두 확인해야 합니다.
차의 기원
뜨거운 음료 중 가장 대표적인 차는 최근 통계에 따르면 매년 2,500억 리터 중 약 20%가 차 소비로 알려져 있습니다. 역사에 따르면 최초의 차나무는 기원전 2,730년경 고대 중국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당시 중국을 다스리던 신농 황제는 약초 학자로 설화에 따르면 신농이 병에 걸려 다양한 약초로 치료약을 만들고 있을 때 야생 차나무 잎 몇 장이 그가 만든 약속에 떨어졌고 시험 삼아 먹어본 그의 몸 상태가 호전됨을 느끼고 이 식물을 중국에서 차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후 2,000년간 중국 문헌에 차에 대한 기록이 나오지만 기원전 1,120년에서 서기 22년 사이의 기록을 보면 다시 차가 등장합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최초의 다기도 이 시대에 만들어졌습니다. 또 다른 설화는 차 문화는 인도에서 시작되어 불교와 함께 중국, 한국 등 다른 아시아 국가로 전파되었다고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하튼 중국, 인도뿐 아니라 미얀마와 태국이 야생 차나무의 원산지임은 분명합니다. 8세기에 불교 승려들이 둥글게 압축한 병차를 중국에서 가져온 계기로 일본의 차문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이 병차를 이용하여 일본식 마차의 초기 형태가 만들어졌습니다. 780년 중국의 작가 육우가 최초의 차 경전인 <다경>을 출간했고 1,100년대에는 일본 최초의 다원에서 중국에서 들여온 차나무 씨앗이 심어졌고 이 시기에는 다양한 형태의 병차와 마차로 만들어 마셨습니다. 명 왕조시대인 1,360년대부터 1,640년대까지 중국에서는 찻잎을 우려내는 방식의 차가 유행했습니다. 이때까지 아시아에서는 대부분 녹차를 마셨지만 16세기 후반부터 중국 푸젠성에서 홍차를 생산하기 시작했습니다.
동양과 서양의 만남
17세기 초에 네덜란드와 영국 무역상들이 중국산 차를 유럽으로 수송하기 시작했습니다. 차 무역은 이 과도기에 급성장했고 동인도회사가 중국산 홍차를 영국으로 실어나르며 검은 금 혹은 무이차에 대한 사람들의 끊임없는 열망에 불을 지폈습니다. 17세기를 거쳐 프랑스와 네덜란드가 유럽 전역의 차를 휩쓸었고 이 무렵 영국령 북아메리카의 동해안 식민지에서도 1,650년대 초에 이르자 수입을 통하여 차를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1,773년 의회 조례를 통하여 동인도회사가 영국 전체의 차 독점 판매권을 얻으며 아메리카 식민지에 새롭게 차 관세를 부과했습니다. 그 결과 그 유명한 보스터 차건이 발생했습니다. 아메리카 원주민 차림을 한 식민지 주민들이 관세에 항의하기 위해 영국 선박에 실린 차를 보스턴 앞바다에 던진 것입니다. 이 사건은 결국 미국 독립전쟁으로 발전했고 미국이 커피 선호 국가 되는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결과 현재까지도 커피는 미국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입니다. 19세기 중반, 영국 경제의 약 5%가 차 무역과 연관되어 있었고 중국과 영국 정부사이의 정치적 갈등으로 인해 동인도회사의 차 독점 판매권이 폐지되었습니다. 이는 영국의 열성적인 차 유통업자들이 새로운 공급원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영국인들은 1,788년부터 인도에 다원을 조성하려 했지만 실패했고 19세기 중반부터 차 무역상들은 일본과 대만, 스리랑카를 비롯한 타 국가에 자립 가능한 차 생산지를 세우는 데 주력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산 차는 쾌선 범선에 실려 전 세계로 수송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차 무역이 활발했음에도 영국 관료들은 중국이 수천 년간 개량해온 차 생산기술에 대한 직접적인 정보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그러다 1,835년 인도 북동부에 위치한 다르질링이 영국령으로 합병되면서 대규모 다원 개발을 위한 기반이 확보되었습니다. 1,848년에 스코틀랜드의 로버트 포천이 중국차 생산정보와 차나무 씨앗, 묘목 등을 인도로 밀수하였고 이는 1,839년 중국과 아편전쟁의 시발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과도한 중국차 수입으로 두 국가 사이에 무역 불균형이 발생했고 이를 상쇄하기 위한 영국의 아편 수출이 중국 내부에서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이후 수십 년이 지나 영국은 중국에서 수입하는 차보다 자체 식민지에서 생산하는 차를 더 많이 소비하게 되었고 일본과 스리랑카 등 생산량이 급증하였습니다. 새로운 공급원들이 만들어지고 더욱 다양한 종류의 차가 유통되면서 무역과 판매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갔습니다.
차의 유명브랜드
미국에서 최초로 인기를 얻었던 차 상품은 19세기 중반 '그레이트 애틀랜틱 앤드 퍼시픽 티 컴퍼니'에서 제조한 '티 넥타'였습니다. 차가 A&P의 탄생과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지만 이 회사가 급격히 성장했던 이유는 당시 미국 전역에 생겨나던 식품 연쇄점이라는 무시 못할 배경이 있었습니다. 스코틀랜드 출신 토머스 립턴은 1,890년 실론에 대규모 다원을 만들었고 포장된 차가 가정의 필수품으로 널리 알려진 데에는 그의 역할이 컸습니다. 1,893년에 그의 이름을 내건 회사가 설립되었고 상품들은 전 세계로 유통되고 있었습니다. 식품 연쇄점의 놀라운 확산과 이를 통한 대량 유통은 립턴 차가 유명해지는데 한몫했습니다. 20세기에는 쇼핑몰이나 슈퍼마켓 등 오늘날 소비자들에게 익숙한 소매 유형 대부분이 탄생했고 차도 이 흐름을 타고 대량생산과 포장판매의 편의성, 저렴한 가격을 앞세워 필수품이 되었습니다. 이런 경향은 20세기에 초고조에 달했고 20세기 말이 되자 차 애호가들은 이국적이고 새로운 맛, 개선된 포장과 유기농 재배 찻잎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스페셜티 차의 시대가 빠르게 다가왔습니다.
아이스티
미국 남부에서 얼음을 넣어 차갑게 마시기 시작한 시점은 대략 1,870년대 이전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아이스티는 보통 홍차가 아닌 녹차였고 흔히 미국에서 발명된 것으로 여겨지는 아이스티는 실제로 남부의 부유층만이 즐겨마셨던 특수 음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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