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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미술

서양 초현실주의 미술

by 볼로냐라이브러리 2021. 7.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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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세계대전이 끝나면서 전쟁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된 다다이즘은 한풀 꺾이게 됩니다. 1922년 초현실주의가 다다이즘의 전통을 이어받아 등장하게 됩니다. 앙드레 브르통은 1924년에 발표한 초현실주의 선언을 통하여 초현실주의란 이성의 모든 통제와 미학적이고 도적적인 선입견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사유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정신의 자유를 강조했던 브르통은 무의식, 상상, 우연, 꿈에 주목했습니다.

 

초현실주의 작품 1: 기억의 지속

달리의 기억의 지속은 엿가락처럼 흘러내리는 시계가 눈에 보입니다. 이 작품을 만들게 된 계기는 달리가 러시아 출신의 갈라 엘뤼아르라와 결혼을 했는데 주방에서 아내가 먹던 까망베르 치즈가 녹아내리는 모습을 보고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 작품을 완성하기 1년 전에 달리는 스스로 비판적 편집증이라 이름 붙인 초현실적 창작 기법을 확립하게 됩니다. 비판적 편집증이란 전혀 다른 두 이미지가 무의식 중에 겹쳐 보이는 상태를 표현한 기법으로 이 경우 째깍 돌아가는 시계와 녹아내리는 치즈라는 상이한 두 요소가 무의식 속에 겹쳐져 새로운 이미지를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림의 가운데에는 기괴한 살덩이가 있습니다. 이것은 달리 자신을 표현하는 자화상으로 다른 작품에도 등장하게 됩니다. 늘 눈을 감고 있는 정체불명의 기괴한 생물은 꿈꾸는 달리를 상징합니다. 왼쪽 아래에는 주황색 시계 위로 수많은 개미 떼가 기어 다닙니다. 그림에서 개미는 부패와 죽음을 뜻하고 이는 달리의 트라우마와 연관이 되어있습니다. 어린 시절 개미에게 파 먹혀 허물만 남은 곤충을 본 달리는 충격을 받았고 이후 개미는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달리는 스페인의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림의 배경은 고향에 있는 부모님의 별장입니다. 성적 콤플렉스, 트라우마 그리고 유년기 기억. 기억의 지속은 달리의 깊은 무의식을 비교적 알기 쉽게 나타낸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초현실주의 운동을 지지했던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인간의 모든 행동에는 반드시 심리적인 이유가 있으며 대부분은 인간의 의식 아래 있는 거대한 무의식에서 비롯된다고 했습니다. 초현실주의 화가들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큰 영감을 얻어 꿈이나 환각 등 무의식의 세계를 표현했습니다. 예술을 통하여 무의식을 탐구하면 궁극의 진실에 도달한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현실주의가 부상한 것은 당시 시대적 배경도 한몫합니다. 20세기 초반 파시즘이 대두되면서 2차 세계대전의 전운이 돌았고 1929년에는 미국의 절정의 호황기에서 급변해 대공황이 발생하게 됩니다. 일촉즉발의 위태로운 세계정세 속에 사람들은 긴장과 불안 속에 살게 됩니다. 이를 민감하게 파악한 예술가들은 자신이 사는 시대적 공기를 회화를 표현하기 시작했고 혼란 속에서 억눌리고 소외당한 인간의 심리를 천착한 초현실주의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초현실주의 작품 2: 도시의 전경

막스 에른스트는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로 평가받습니다. 그는 자동기술법을 사용하여 습관적인 관념과 의식에서 벗어나 붓이 가는 대로 그림을 그렸습니다. 대표적인 작품이 도시의 전경입니다. 그즈넉하고 몽환적인 밤의 풍경처럼 보이지만 보름달처럼 보이는 건 사실 태양입니다. 고대 유적을 연상시키는 건축물이 햇빛 아래 은은한 빛을 발하고 바닥에 어지럽게 헝클어진 꽃과 풀잎은 불안감을 더 높여줍니다. 에른스트는 종종 실제로 눈앞의 대상이 마음대로 움직이는 환영을 자주 보았는데 그는 잠재의식 속에 존재하는 환영을 끄집어내 화면을 옮기고자 노력했으며 환상적이고 기묘한 이미지를 형상화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에른스트의 작품은 여러 의미로 해석됩니다. 도시의 전경은 에른스트가 고안한 그라타주 기법으로 제작된 작품입니다. 그라타주란 프랑스어로 표면을 지운다라는 뜻입니다. 우선 캔버스에 유화물감을 두껍게 칠한 후 각종 도구를 이용하여 표면을 긁어 독특한 조형적 효과를 나타냈습니다. 색의 두께의 변화에 따라 빛, 그림자 등의 미묘한 시각적인 효과를 얻고 화가가 미처 예상치 못한 기이한 이미지가 만들어집니다. 에른스트는 무작위로 나타난 형상을 그대로 살렸으며 끝부분에는 수많은 수정 과정을 거쳤습니다. 그에게 우발적으로 표현된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무의식에서 영감을 받기 위함이었으며 그 자체로 완성되었단 뜻은 아니었습니다. 에른스트는 완전히 무의식에 기댄 예술이란 존재할 수 없다고 말했고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독일에서 다다이즘을 선도했으며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브르통, 뒤샹 등 초현실주의 동료들과 함께 뉴욕으로 망명하게 됩니다. 그들이 뉴욕에서 만든 초현실주의 집단에는 아실 고르키, 잭슨 폴록, 로버트 머더웰 등 미국의 현대미술을 이끄는 젊은 예술가들이 많았습니다. 에른스트는 그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면서 초현실주의를 이끌었고 미국 추상표현주의의 초석이 됩니다.

 

초현실주의 화가의 종류

하나는 꿈과 무의식 세계에서 일어나는 미스테리한일을 익숙한 형상으로 그린 화가들입니다. 살바도르 달리가 대표적인 인물이며 그는 비합리적인 생각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화풍으로 큰 인기를 얻었습니다. 다른 분류는 자동기술법을 시도했던 화가들입니다. 그들은 무의식을 표현하기 위해 이성과 의식의 영향에서 벗어나 손이 가는 대로 그렸고 막스 에른스트는 무의식을 조형으로 형상화하는 기법을 시도하여 미술계를 깜짝 놀라게도 했습니다. 이는 이후에 등장하는 추상표현주의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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