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Wine & Pub/Beer

유럽 맥주 역사 상식

by 볼로냐라이브러리 2021. 4. 20.
반응형

풍요의 땅인 나일 삼각주에서 고대 이집트인들은 맥주를 만들었습니다. 보리와 밀이 발효된 술을 발견한 이집트인들은 삶의 기쁨을 찾았습니다. 제사나 축제에도 맥주가 빠지지 않았고 그들은 맥주가 주는 기쁨을 인간의 영역이 아닌 마법과 같은 신의 영역이라 여겼습니다. 

 

인류가 발견한 마시는 빵

고대 이집트인들은 사후에도 맥주를 마신다고 생각하여 피라미드에 맥주를 넣었습니다. 무덤에 미라와 함께 부장품으로 10종의 고기를 비롯하여 6종의 맥주와 와인을 넣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맥주를 마시고 구토하는 사람을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장면도 벽화에 남아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는 맥주를 빨대로 마셨다고 합니다. 당시 맥아로 빵을 반죽하여 살짝 구워 물을 부어 걸쭉한 상태로 만들어 자연 발효시켰습니다. 하지만 맥주의 제조법은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손맛으로 전해왔기 때문에 이집트인들은 맥주 빚기를 운에 맡겼습니다. 제대로 된 향과 맛이 나는 맥주를 만들게 되면 신이 선물을 주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신의 음료인 맥주를 만드는 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비한 힘이 작용했습니다. 고대인들은 곡물을 이산화탄소와 알코올로 분해하는 균류인 효모의 존재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런 균류에 조금씩 주입 못하다가 보리나 밀을 갈아 일정 조건 아래 두면 사람의 몸과 마음을 좋게 하는 맥주로 변한다는 것을 알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실제로 맥주는 이집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습니다. 하지만 빵 반죽 형태로 만든 맥주는 갓 빚었을 때는 부드럽고 맛있지만 금방 시큼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이집트 가정에서 사용된 식초는 와인 식초가 아닌 맥주에 의해 만들어진 식초였습니다. 이를 막기 위해 상큼하고 신맛을 내는 콩과 식물인 루핀의 씨앗을 첨가했기 때문에 맥주의 쓴맛이 강해졌고 루핀 외에도 첨가물을 투입하여 향이나거나 탄산이 있는 맥주 등 다양한 맥주를 빚었습니다.

 

전쟁의 승리비결: 맥주

로마의 위대한 군인이자 정치가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지중해 중심으로 넓은 지역을 신민지로 만들어 로마에 물질적인 풍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도시국가였던 로마를 제국으로 만든 카이사르가 정복했던 갈리아 지방에서 놀라게 되는 사건이 있습니다. 원주민인 켈트족들이 로마인처럼 점잖게 치마를 입는 것이 아니라 바지를 입고 있었다는 점과 밤마다 이상한 음료를 마시며 즐거워했다는 점입니다. 카이사르는 "켈트인들은 오크나무로 만든 둥근 통에 든 보리로 만든 이상한 술을 즐기고 있다"라고 기록했으며 맥주를 말 오줌처럼 누렇고 싱거운 맛의 이상한 술이라고도 했습니다. 당시 로마인들이 보기엔 흙수저의 술로 인식하고 있었고 야만과 빈곤의 증거였습니다. '야만인'켈트족이 즐기던 맥주는 중세 게르만 시대를 거치면서 모든 계층에서 사랑받는 대중적인 술로 변모했습니다. 맥주를 널리 보급한 사람은 로마 제국의 황제 카를루스 대제였습니다. 카를루스 대제는 프랑스, 독일 군주의 시조이며 로마 제국 이후 처음으로 서유럽 대부분 지역을 정복하여 정치적, 종교적인 통일을 이루었습니다. 평소에는 술을 적게 마셨지만 전쟁터에서는 맥주 오크통을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에게 맥주는 전술적 무기였습니다. 큰 전투를 앞두고 병사들과 어울려서 밤새도록 마셨고 다음날에는 괴력을 발휘해 대승을 거두기도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의 윈스터 처칠도 후방의 어떤 군대보다 우선해 교전 중인 군대에 맥주를 일주일에 약 2리터씩을 반드시 보내라고 명령했습니다. 

 

중세시대 흙수저의 술: 맥주

중세 초기만 해도 자연 발효시킨 꿀술이 인기가 많았지만 꿀은 쉽게 구할수 없었습니다. 그리하여 서민들은 값싼 맥주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당시에는 귀족뿐 아니라 일반 가정에서도 맥주를 빚을 수 있었습니다. 중세에는 영주들이 소유한 장원을 중심으로 형성된 농업공동체 사회였고 자작농과 장원에 소속된 농노들은 씨를 뿌려 수확했습니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맥주를 마시면서 피로를 풀곤 했습니다. 당시 맥주 빚기는 여성의 몫이었습니다. 맥주를 담그는 것은 철마다 챙겨야 할 가사노동이었고 혼수품 목록에는 으레 맥주를 끓이는 커다란 솥이 들어있었습니다. 중세의 맥주는 단순히 취하거나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마시는 술이 아니었습니다. 서민들의 로망이었습니다. 당시 맥주는 영양가가 높은 수프처럼 인식되어 있었고 술이 아니라 액체로 만든 빵, 마시는 빵이었습니다. 맥주는 칼로리가 꽤 높습니다. 현대인들은 고칼로리 식품을 피하지만 중세시대에는 정반대였습니다. 또 중세에는 맥주가 화폐 역할도 일부 겸했습니다. 영주는 품삯을 치를 때 맥주 현물을 포함시켰고 장인은 도제의 급여를 맥주로 계산하기도 했습니다. 맥주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된 비결은 바로 '홉'입니다. 8세기 독일 뮌헨 근교에서 재배된 홉이 맥주에 첨가됨으로써 맥주는 비로소 오늘날의 맥주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맥주의 쓴맛을 얻기 위해 로즈메리나 파슬리, 호두, 쑥 등을 빻은 가루를 맥주보리와 함께 삶았습니다. 이런 맥주는 신맛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발견된 홉을 사용하자 식혜처럼 달거나 신맛이 사라진 향이 진한 쓴 맥주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홉을 첨가한 쓴 맥주는 당시 서민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홉은 맥주가 상하는 것을 방지해주었기 때문에 더 먼 지역까지 유통될 수 있었습니다. 

 

역사를 바꾼 맥주

청교도 지도자 존 윈스럽을 태우고 미국으로 간 배에는 1만 갤런의 맥주가 실려 있었습니다. 식량보다 맥주가 더 많이 실려있었고 이는 신대륙의 여사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영국인과 독일인의 조상인 바이킹에게 맥주가 영생을 약속하는 영약이었다면 중세 서민들에게는 근심을 잊고 천국으로 가는 묘약같은 존재였습니다.

 

 

반응형

댓글